- 저자
- 로리 파슨스
- 출판
- 오월의봄
- 출판일
- 2024.09.02
인덱싱을 하면서 독서를 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페이지에 표시를 했던 책이었다. 이번 겨울에는 굳이 새 옷을 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 옷더미 산의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담론으로 이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에 환경 규제를 하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하면 안되는걸까 하는 류의 나의 나이브한 생각들은 당연하지만 완전히 어긋났고, 내 개인의 노력으로는 바꾸기 힘든 거대한 시장의 착취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좋아하는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후반 시즌 줄거리가 떠올랐다. 천국에 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티셔츠를 한 장 입고, 샌드위치를 하나 먹는 순간 온갖 글로벌 기업의 악행에 가담하고, 환경 파괴를 가속하는 것으로 카운트되어 모든 인류는 지옥에 가게 된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굉장히 분노하면서도 허망해한다.
지속가능성이란 생산과 경제의 논리, 탄소 식민주의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유리되어있다고 생각한 산업화와 도시 이주문제와 다국적 기업의 공급체인 문제가 훨씬 많은 착취적 요소들과 엮여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무력함이 느껴졌다. 너무 많은, 너무 거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재앙적인 기후 위기와 현재의 종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이마저도 저개발국가의 사람들, 저소득층 사람들에게는 훨씬 심각한 변화가 되겠지만)
그러나 한 가지 작가와 이 책에 감사했던 것은 착잡한 심정으로 페이지를 마저 넘기던 중, 종말론적인 인식으로 빠져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는 점이다. 당장 빨대를 하나 덜 쓰고, 이면지를 한 장 쓰는 것이 지구의 온도를 낮추지는 않겠지만 이런 사람들의 존재를 기업과 정부가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촉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하나의 희망으로 남아주었다.
[51] 우리는 규모의 경제라는 발상, 즉 더 많이 만들수록 제품이 더 저렴해진다는 발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추출에 관한 한 종종 정반대의 진실이 드러난다. 광물을 추출하기 위해 땅을 더 깊이 파든,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진입로를 더 멀리 내든, 희소성의 증가는 비용의 증 가로 이어진다. 이윤을 흑자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착취된 노동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전 지구적 규모에서 볼 때 추출은 수익성이 낮다. 바로 이 것이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가 독립 이후 그 식민국을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71]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노동을 산업 노동보다 훨씬 더 선호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산업 노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통적인 노동을 쓸모없는 노동,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동, 불법적인 노동으로 바꿔버리 는 것뿐이었다. (중략) 그보다 더 유명한 방법은 농촌 지역의 공유지를 폐쇄하는 인클로저와 생산성이 있는 토지 에 대한 소유권 강화 및 확대를 통해 전통적인 농촌 생활방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76] 땅을 빼앗긴 농민들 또는 막대한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농민들은 야음을 틈타 보 호림에서 나무를 벤다. 그 밖의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트롤 어선이 호수 바닥을 모조리 쓸고 지나가고 나면 전기봉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한 마디로 말해 지속가능성은 부서지기 쉽다.
[109] 생산이 이런 법적 규제의 효력 범위를 규정하는 국경을 점점 더 넘어서면서 그 법률들은 보편성을 잃기 시작했다. 법적 규제와 그것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오 늘날의 글로벌 공급망은 서로 다른 환경 기준과 노동 기준으로 바느질된 조각보를 횡단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공장 내부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자신이 속한 부문에 따라 서로 다른 권리와 의무 체계를 적용받는다.
[127] 더 부유한 국가에서 더 가난한 국가로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외주화하는 능력은 '탄소 식민주의‘로 묘사되어왔다. 탄소 식민주의는 탄소 회계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권력관계를 강조하는 용어다. 더 부유한 국가, 즉 과거에든 현재에든 기후변화에 대한 압도적인 책임을 짊어진 국가들이 협상 석상에서 탄소 완화의 조건을 설정한다. 그 조건은 당연히 배출량이 가장 많은 국가들에게 유리하다. 덕분에 경제 규모가 더 큰 국가 들은 더 작은 국가들로 생산 공정을 이전하면서도 그 생산이 제공하는 경제적 결실은 그대로 차지해왔다.
[180] 인간의 경제는 기후 압력에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방글라데시에서 홍수와 가뭄은 토지의 최초 판매 가능성을 높이는 촉매가 되어 해당 지역에서 더 많은 토지 판매를 부추기는 침수, 토지 붕괴, 흉작의 악순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토지를 포기하게 되면서 토지 판매가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기후변화의 영향이 심화되는 지역이 점점 더 늘어난다.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다카와 다른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도시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벽돌 수요가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농민이었던 사람 들이 부풀리고 농장이었던 장소가 부추긴 벽돌 부문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악순환은 이어진다.
[288] 해결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 인데 말이다. 종말론적 기후 이주 담론이 그토록 해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담론은 대개 이주민에 대한 해로운 정치적 고정관념, 즉 그들이 절박하고 위험한 무리라는 틀에 박힌 생각과 이미지를 양산해낸다. 우파 언론의 이민 담론과 마찬가지로 좌파 언론의 기후 이주 담론도 그런 고정관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그로 인해 가장 시급한 조치 가 무엇인지 사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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