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문보영
- 출판
- 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24.11.13
제주에 연이 생긴 뒤로 문학 작품에 제주의 이야기가 나오면 뭔가 조금 더 가깝게 읽게 된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로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이었지만 제주와 포르투갈, 독일이라는 인연과 애정이 닿아있는 세 장소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내 편'으로 상정하고 읽었던 소설이었다. 한 두 단어로 요약하기 어려운 길자씨, 빨간 비키니 사진을 머리맡에 두는 사람이라는 묘사가 인상깊었다. 나도 이렇게 요약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함부로 나를 요약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길게 남았다.
[30] 이모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독일 사람 다 됐네, 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경섭은 그 말이 조금 슬프게 들렸다. 이모는 제주를 떠나기 전에도 특이하고 유별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데, 그 말이 독일 사람 다 됐네, 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50] 이모는 빨간 비키니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잔 사람이었어. 언젠가 길자씨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테니까. 가족 없이, 타향에서 독신으로 살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이모의 인생을 요약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결론짓는 것은, 상상의 태만이 아닐까. 효진은 액자를 품에 안았다. 황금 사과를 만져버렸군. 효진은 속으로 생각하며 경찰에게 사진 한 장을 챙겨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84] 새가 슬프다고 말하는 건 그 새를 바라보는 '너'일 뿐이에요. 슬픈 건 '너'이지 '새'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소설은 새를 바라보는 것에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쓰던 도중 종종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슬픈 건 저일 뿐, 길자가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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