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 출판
- 문예출판사
- 출판일
- 2023.02.20
편독이 심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성작가들이 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 읽는걸로 독서의 욕구를 채우곤 하는데, 이것은 그 밖의 책을 읽는 것이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형용하기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필독도서’와 ‘추천도서’가 너무 많아 내 취향의 편협함이라 생각했다. 최근 소위 ‘젖가슴문학’이 싫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내 치우친 독서 이력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자화의 대상이 되지않는 이들은 그것이 왜 모욕적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뮤즈로서 그가 원하는 이미지에 투영되는 일, 납작한 캐릭터의 인물로 쓰고 버려지는 일, 출산과 육아의 그릇으로 도구화되는 일, 신체의 일부만 클로즈업되어 ‘문학적’으로 설명되는 일이 내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모욕은 나에 대한 모욕과 다르지 않다.
창작과 비평의 영역에도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고, 그들은 더욱이나 문장으로 위장하는 일에 능하기에 더욱 교묘하다고 느낀다. 여성을 주체로 하는 읽고 쓰기가 훨씬 늘어나 안전지대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10] 이 작품들은 소설의 화자인 나를 통해 지속해 서 여성을 부정적으로 정의한다. 많은 작품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만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고는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여성은 이 남성들을 빛나 보이게 하는 존재일 뿐이다.
[13]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이 여성을 규정하는 시각은 마치 세계사의 흐름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보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문학적 역공이다. 문학적 역공을 주도하는 자들은 여성이 시민으로서 자리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남성성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들은 언제까지 문학에서 이런 모욕을 경험해야 할까.
[55]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를 출간하기 직전인 1918년, 영국에서는 서프러제트 운동으로 비로소 삼십 세 이상의 여성이 참정권을 얻 었다. 이렇듯 《달과 6펜스》가 유럽 여성이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 로 주장하던 시기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나'가 티아레와 아타의 종속적 태도를 어떠한 분석이나 비판 없이 서술하는 데는 일종의 의도가 담겼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달과 6펜스》는 여성을 '뮤즈'로 만들거나 착취하는 것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 성 예술가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는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56] 문제는 과거에 '예술가들의 어쩔 수 없는 여성 편력'이라고 이야기됐던 것이 성 착취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성 혹은 자신을 선망하는 여성 제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으며, 현재 기준으로는 성폭행이 명 백한 행위를 일삼았다. 최근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심리적•정신적으로 지배• 조종하는 일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57] 식민지 종주국 남성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종속국에서 악질적인 성범죄를 저지른 고갱이 《달과 6펜스〉를 통해 '고결한 예술혼의 소유자'로 신화화됐다는 사실은 이 소설 을 평가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허구의 인물 스트릭랜드 에게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 실존했던 고갱에게도 면죄부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70] 대중문화부터 사회적 논평, 정치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권위 있는 목소리들이 여성들에게 '참전 용사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니 당신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다수의 여성 이 일하던 자리는 전쟁 전 젊은 남성들의 일자리가 아니었고, 대부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 이전인 1930년대에 정규 임금을 받으며 일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72] 미국의 백인 남성들이 누리던 삶은 처음에는 대공황 때문에, 그다음에는 전쟁 때문에, 그다음에는 그들이 나가서 싸우는 동안 자신들의 자리 대체한 여성들 때문에 파괴되었다. 누아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개했다. 탐정, 형사, 짭새 등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적법한 권력의 자리에서 축출되었고 여성에게 근본적으로 위협당한다면서 여성을 전능한 위치에 올려둔다. 그런 다음, 이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의 원인을 여성들에게 돌린다. 누군가를 죽이고 은행을 털었던 모든 짓이 팜므파탈이 조종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115] 어쩌면 데이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평가받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 지를 너무 많이,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수도, 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다. 출산 당일 남편 없이 홀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데이지의 다음과 같은 자조적인 말은 그녀가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무엇을 원했는지를 정확히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 에선 바보가 되는 게 속 편하다. 귀여운 바보.
[135] 혹시, 안면 근육에 힘이 풀린 듯 입을 야무지게 다묻지 못하 고 초점없는 눈빛으로 멍하게 어딘가를 응시하는 표경으로, 다소 흐트러진 머리 모양에 적당히 신제가 노출된 옷차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나른한 듯하다가 어느 순간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을 알쏭달쏭 헷갈리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갑자기 기분이 바뀌어 주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천진하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순수하게 굴다가, 예고 없이 관능미를 폭발하는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있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에서 만날 가능성은 극히 드 물지만 이런 여성은 영화와 문학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151]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물려 있는 나자는 브르통에게 돈 을 벌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했을지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어떤 방법'에는 성매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암시된다. 나자 는 브르통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주변 남자들의 성적 지분거림에 시달린다. 물론 브르통은 '시달린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일이 나자의 신비한 매력 덕분에 벌어지는 일이라 여긴 다. (중략) 가난한 여성의 자유로움은 쉽게 만만함으로 오역된다.
[152] 나자의 몸은 희롱당하고, 구타당했다. 초현실주의가 사랑한 절단된 신체가 언제나 여성의 몸으로 나타났다는 점과 닮았다. 인체의 사물화, 정확히는 여성 신체의 사물화다. 장갑, 숟가락, 시계, 전화기, 악기와 연결되는 여성의 몸은 그들에게 예술의 오브제에 불과했다. 나자가 가혹하게 구타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브르퐁이 느낀 거부감은 나자의 몸이 인격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마주한 것에 대한 당흑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자가 겪었을 고통에 감정 이입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 감정 이입이 나자를 신비화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수수께끼처럼 묘한 나자가 아니 라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자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80]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와 조르바 같은 남성은 존재한다. 우리는 성기를 꺼내놓고 흔들어대며 자신이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현대의 조르바를 보았으며, 그를 보고 '천재'라고 감탄하며 '자연'과 '원시'의 힘을 체화한 정열적인 존재로 추켜세우거나 침묵한 수많은 ‘나’도 보았다.
[186] 내용은 네 가지 측면에서 진부하다. 첫째. 인간의 조건인 일상의 노동'과 '초월성'을 대립시킨다. 초월성은 노동을 부정하는 부정의이자 젠더 화된 언설의 대표적 관념이다. 둘째, 초월적 인간이 되려는 강력한 동기가 경제력을 가진 여성 에 대한 분노와 일하는 여성=구차한 현실'이라는 성차별에서 나 온다. 셋째, 여성의 도구화로 이를 재현한다. 마지막은 일제시대 라는 배경을 강조하며 《날개〉를 '지식인의 고뇌'로 읽는 천편일 률적 독해다. 읽기의 진부함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지식인 남성 만 고통스러운가? 게다가 〈날개〉의 남성 주인공이 살아가는 방식과 목소리는 어느 시공간에나 존재한다.
[191] 노동하지 않고, 무능하며,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 면서도 여성 부양자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며 자신을 피해자라 고 주장하는 ’20대 남성 현상'의 기시감을 〈날개〉에서 본다.
[201] 포주 남성은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미니스트라고 말했고, 진보 남성들은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치하하며, 성을 구매할 권리에서 남성 계급 간의 차이가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집회 이후 가난한 남성, 장애 남성, 이주 남성도 성을 살 권리가 있다는 영화와 주장이 쏟아졌고, 이들을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반발과 이로 인한 충돌이 빈번히 이어졌다.
[206] 종속적인 위치의 남성들은 약자와 연대하기보다 패권적 남성의 자리를 욕망하거나 그들에게 자신의 여자'를 상납한다. 군 위안부 동원에 참여한 한국 남성, 기지촌 성 산업 에 종사하는 여성을 민간 외교관'이라고 치켜세운 박정회 정권, 1970~80년대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자행된 '기생 관광' 등이 그 생생한 역사다. 지금도 우리는 거의 매일 '성 상납'이라는 말을 접한다. 성 상납은 남성과 남성이 물자인 여성을 교환하는 그들만의 정치경제다. 여기서 여성은 양주나 과일, 한우 세트 같은 물건이다. 그들은 때때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못생겼다") 싸운다.
[214] 티자화는 발화자 자신에게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는 데 타인을 동원하는 폭력이다. 인간 범주를 독식한 제1의 인간인 성인 남성의 기준에서 여성은 가장 재현하기 쉬운 타자이고 기존의 문학은 이러한 관습을 반복, 변주해왔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위 중 가장 비윤리적이다.
[239] 그들은 말하지요. 우리는 집에서 안전하게 살지만 자기들은 창을 들고 싸운다고. 바보 같으니라고! 나는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세 번 싸움터로 뛰어들겠어요.
군대와 출산의 대립은 이때부터 있었다. 무엇이 더 큰 고통인 지 무게다는 일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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